더 렐릭 퍼스트 가디언 (전투시스템, 보스전, 완성도)

B급 액션 게임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말,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더 렐릭: 퍼스트 가디언은 국내 개발사가 만든 다크 판타지 액션 RPG로,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30시간 가까이 플레이해보니, 이 게임은 "아깝다"는 단어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뼈대를 가졌는데도 기본 완성도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임은 흔하지 않습니다.

전투시스템, 과연 이 게임의 유일한 희망인가

더 렐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긍정적인 요소가 바로 전투시스템입니다. 전투시스템이란 플레이어가 적과 싸울 때 사용하는 조작 체계 전반을 뜻하는데, 이 게임은 다섯 가지 무기를 제공하고 각각의 콤보 타이밍과 스킬 트리를 다르게 설계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배틀 스태프 하나만 해도 근접 회오리바람형 전사로 키울 수도 있고, 강력한 원거리 마법 공격에 특화된 방향으로 완전히 다르게 육성할 수 있습니다. 같은 무기를 들고도 플레이 방식이 이렇게 갈린다는 점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렐릭 포인트입니다. 렐릭 포인트란 스킬 트리를 해금하는 데 쓰이는 자원으로, 경험치처럼 단순 전투로 쌓이지 않고 특정 보스전, 퀘스트 보상, 혹은 필드 곳곳에 숨겨진 푸른 제단에서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한 빌드를 완성하려면 극후반부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투자한 포인트를 언제든 초기화해 재분배할 수 있어서, 저도 새로운 보스에 막힐 때마다 빌드를 통째로 갈아엎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스태미나 시스템도 눈에 띄는 설계입니다. 스태미나란 행동에 소모되는 에너지 게이지를 말하는데, 더 렐릭은 방어 동작에만 스태미나가 소모되고 공격에는 소모되지 않습니다. 이 덕분에 공격적으로 전투를 이끌어가는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장려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적들에게 피격 경직이 거의 없어서, 막상 공세를 퍼부어도 적이 아랑곳없이 공격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틈을 기다려야 한다는 전략적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답답함이 앞서는 순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보스전이 이 게임의 민낯을 가장 잘 보여준다

더 렐릭의 보스전은 무려 75종이 넘습니다. 대부분은 선택 콘텐츠이고, 잘 만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편차가 유독 크게 느껴집니다. 잘 설계된 보스전은 패링이나 회피 타이밍을 맞추는 공략의 재미가 살아있습니다. 패링이란 적의 공격을 정확한 타이밍에 막아 반격 기회를 만드는 행동인데, 이게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은 이 게임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최악의 보스전을 만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버그만 꼽아도 이 정도입니다.

  1. 보스가 갑자기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굳어버린 경우
  2. 사망 후 재스폰했더니 보스가 아예 등장하지 않아 텅 빈 방에 갇혀버린 경우
  3. 체크포인트에서 허리까지 지형에 파묻힌 채 로딩된 경우
  4. 지형지물에 끼여 탈출 불가 상태가 된 경우

두 번째 상황은 게임을 완전히 재시작하기 전까지는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습니다. 보스의 공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데 캐릭터만 덜렁 서 있는 방 안에서 맞으면서 기다리는 경험은 꽤 황당했습니다. 이처럼 기술적인 결함이 전투의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순간, 공략 성공의 성취감도 함께 희석되어버립니다.

반면 서브 스토리 보스전은 다른 결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한국 민담을 바탕으로 설계된 서브 스토리들 중 일부는 보스전 없이 조용한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구성을 선택했는데, 그 중 정상에 꽂혀있는 수많은 바람개비만으로 이야기를 끝맺는 퀘스트는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억지로 보스를 끼워넣지 않은 드문 선택이었고, 오히려 그게 더 기억에 남습니다. 보스전을 75번 넘게 준비했다는 제작진의 노력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양보다 밀도를 높이는 방향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완성도의 균열,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더 렐릭을 10시간 이상 플레이하면 장점보다 균열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각적인 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컬러 필터입니다. 컬러 필터란 지역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화면 전체에 씌우는 색감 레이어를 말하는데, 이 게임은 지역마다 단일 컬러 필터에 의존합니다. 민트색 안개숲, 누런 힐스브래드, 녹색 늪지대, 그리고 불타는 마을의 오렌지 붉은색까지. 문제는 이 필터가 분위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화질을 뭉개고 길 찾기를 방해하는 수준이라는 점입니다.

번역과 더빙 품질도 몰입을 가로막는 요인입니다. 자막이 성우의 음성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고, 일부 대사는 제대로 된 윤문 없이 직역한 티가 역력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국내 개발 작품인 만큼 한국어 서비스만큼은 자연스러울 것이라 기대했는데, 서브 스토리의 장황한 문장들을 읽다 보면 로컬라이제이션 작업에 충분한 시간이 투입됐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로컬라이제이션이란 게임의 언어와 문화적 맥락을 현지 환경에 맞게 가다듬는 작업을 뜻합니다.

탐험 보상 구조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필드 곳곳에 루팅 마커가 수백 개씩 널려있지만 대부분이 30~50 골드 수준의 소액입니다. 숨겨진 보물 상자를 열어도 600 골드 안팎이 전부인 상황이 20시간 넘게 반복됩니다. 평소에는 맵 마커를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편인데, 이 게임에서는 그 행위가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후반부에는 잡몹과의 전투 자체를 피해서 달리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였습니다. 스팀 스토어 페이지에서 이 게임의 기본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더 렐릭: 퍼스트 가디언을 두고 "프롬 소프트웨어 아류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평가가 온전히 맞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프롬 소프트웨어가 만든 소울라이크 장르, 즉 높은 난이도와 죽음을 통해 배우는 설계를 기반으로 한 액션 RPG 계보를 따르려 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계보 안에서도 한국 민담을 접목한 서브 스토리나 스태미나 소모를 방어에만 적용한 전투 설계는 나름의 독자적인 시도였습니다.

문제는 이 시도들이 완성도라는 토대 위에 올라서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록온 시스템이란 특정 적을 조준 상태로 고정하는 기능인데, 이 게임의 록온은 다수의 적이 몰려들 때 엉뚱한 대상을 잡거나 갑자기 해제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여기에 카메라까지 격렬하게 흔들리면 전투의 흐름을 읽기 어렵습니다. 빌드 구성의 자유도가 높고 보스전의 패턴 공략이 흥미로워도, 이런 기본기의 구멍들이 그 재미를 계속 끊어놓습니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어떤 플레이어에게 의미가 있을까요. "장르 자체를 좋아하고 기술적 결함에 어느 정도 관대한 분"이라면 전투 빌드 구성의 재미만으로도 10~15시간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면 완성도 높은 경험을 기대하는 분께는 현 시점에서 선뜻 권하기가 어렵습니다. IGN 코리아의 공식 리뷰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평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후속작이나 대규모 업데이트를 통해 기술적인 안정성과 탐험 보상 구조를 보완한다면, 이 게임이 가진 잠재력은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더 렐릭: 퍼스트 가디언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작품입니다. 전투 빌드를 갈아끼우며 보스 패턴을 파훼하는 과정은 분명 이 게임만의 매력입니다. 하지만 그 재미에 온전히 몰입하기까지, 버그와 불편한 카메라, 반복되는 배경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구매를 고민 중이시라면 패치 이후를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이고, 소울라이크 장르를 깊이 좋아하는 분이라면 현재 상태에서도 건질 거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시작하는 것이 이 게임을 가장 현명하게 즐기는 방법일 것입니다.

--- 참고: https://kr.ign.com/the-relic-the-first-guardian/15435/deo-relrig-peoseuteu-gadieon-rib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