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스 오브 아인크라드 (세계관, 전투, 성장시스템)
소드 아트 온라인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직접 아인크라드에 들어가면 어떨까?" 상상해봤을 겁니다. 에코스 오브 아인크라드는 바로 그 상상을 현실로 옮긴 게임입니다. 키리토 없이, 제가 만든 오리지널 캐릭터로 죽음의 게임에 뛰어드는 설정은 처음 켰을 때부터 기대감을 확 끌어올렸습니다. 다만 직접 플레이해보니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격이 꽤 크더군요.
아인크라드 세계관, 이번엔 진짜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소드 아트 온라인 게임 시리즈에 그렇게 큰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습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키리토라는 캐릭터 하나에 지나치게 기대는 구조가 반복됐고, 팬 입장에서도 점점 익숙함이 식상함으로 바뀌어 가던 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에코스 오브 아인크라드는 출발점이 달랐습니다. 키리토는 이 게임에서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만든 오리지널 캐릭터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됩니다.
도입부에서 신규 유저로서 소드 아트 온라인의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고, 이오리나 사유 같은 동료들을 만나 파티를 맺는 과정은 꽤 영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프롤로그는 단순한 튜토리얼이 아니라, 게임의 기본 조작을 익히면서 동시에 원작 애니메이션 첫 화의 설정을 그대로 체험하게 만드는 이중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플레이하면서 "아, 이게 그 장면이구나" 하는 순간이 꽤 여러 번 있었고, 원작 팬으로서 그 감각은 분명히 반가웠습니다.
스토리 역시 원작의 틀 위에 독자적인 이야기를 얹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주인공 일행이 미래의 재앙을 예고하는 브로치를 손에 넣으면서, 100층까지 올라가 게임을 클리어해야 한다는 기존 목표에 종말을 막아야 한다는 새로운 긴장감이 더해집니다. 이 설정이 원작을 훼손하기보다 보완하는 방향으로 기능한다는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이 좋은 뼈대를 채울 세계 자체의 밀도가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탐험 가능한 아인크라드의 층수는 1층과 2층, 단 두 개뿐입니다. 1층은 늪지대가 섞인 숲 지형, 2층은 황량한 사막이 전부입니다. 완전한 오픈 월드(Open World)가 아니라 스토리나 서브 미션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구역을 따로 로딩하는 반오픈 월드(Semi-Open World) 방식인데, 이는 원하는 곳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특정 미션 안에서만 허용된 구역을 돌아다니는 방식을 뜻합니다. 경계선을 넘으려 하면 강제로 발길이 돌아가는 구조가 반복되다 보면, 100층짜리 거대한 부유성에 있다는 느낌보다 좁은 통로를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남습니다.
전투 시스템, 이 게임에서 유일하게 배신당하지 않은 것
그렇다면 이 게임을 끝까지 잡게 만든 힘은 뭐였을까요? 저한테는 전투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액션 RPG(Action RPG)겠거니 했습니다. 액션 RPG란 실시간으로 직접 조작하며 공격과 방어를 수행하는 롤플레잉 게임 장르를 뜻합니다. 약공격, 강공격, 스킬 이렇게 세 가지 버튼만 쓰면 끝나는 게임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스전에 들어가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패링(Parrying)에 성공했을 때입니다. 패링이란 적의 공격 타이밍에 맞춰 방어 조작을 입력해 공격을 튕겨내는 메커니즘으로, 성공하면 파트너 캐릭터와 함께 연계 반격기가 발동됩니다. 묵직한 보스 공격을 정확히 받아낸 직후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반격 연출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맞는 느낌보다 이기는 느낌에 가까웠거든요.
무기군도 한손검, 단검, 양손 도끼, 레이피어, 메이스 등 여섯 종류가 있고 저마다 전투 감각이 확연히 다릅니다. 메이스나 양손 도끼 같은 중무기는 적을 짓눌러 넘어뜨리는 자세 붕괴(Stagger) 효과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자세 붕괴란 적의 방어 태세를 무너뜨려 일정 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전투 메커니즘입니다. 반면 레이피어는 공격 속도가 빠르고 소드 스킬(Sword Skill) 중 하나인 오블리크 런지를 쓰면 충격파가 발생해 다른 무기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전투 리듬이 생깁니다. 소드 스킬이란 SP(스킬 포인트)를 소모해 발동하는 특수 공격 기술로, 무기마다 다른 효과와 상태 이상을 적에게 부여할 수 있습니다.
제가 특히 좋았던 건 양손검의 캐스케이드 스킬이었습니다. 적의 신체 부위를 절단해 공격 패턴을 바꾸는 부위 파괴(Part Break) 시스템이 적용되는데,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 경험해봤던 그 쾌감과 꽤 비슷한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무기에 장착 가능한 소드 스킬은 세 개로 제한되기 때문에, 어떤 스킬 조합을 들고 갈지 전투 전에 미리 고민하게 됩니다. 이 선택지가 좁은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전략 구성에 들어가는 시간이 꽤 깁니다.
성장 시스템, 어디서 막히고 어디서 풀리는가
캐릭터 성장 방식이 복잡하면 접근하기 어렵고, 너무 단순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에코스 오브 아인크라드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생각보다 직관적이고, 동시에 고민할 여지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레벨업마다 성장 포인트를 획득해 원하는 스탯에 투자하는 구조입니다. 특정 스탯이 일정 수치에 도달하면 공격 속도 증가나 경험치 획득량 보너스 같은 마일스톤(Milestone) 버프가 개방됩니다. 마일스톤 버프란 특정 조건을 달성했을 때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보너스 능력치로, 육성 방향을 미리 설계할 동기를 줍니다. 어떤 무기를 주력으로 쓸지에 따라 어떤 스탯에 투자할지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구조라 복잡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장비 강화 시스템도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몬스터를 잡다 보면 쓸 것 같지 않은 장비가 산더미처럼 쌓이는데, 마을 대장장이에게 가면 이걸 주력 무기의 강화 재료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패시브 스킬이 붙은 장비를 희생해서 그 능력을 다른 무기에 이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저는 새 무기를 얻을 때마다 전력 질주 속도 24% 증가 옵션을 이식해서 달았는데, 텅 빈 필드를 달릴 때 이 옵션 하나가 체감 피로도를 꽤 줄여줬습니다.
다음은 에코스 오브 아인크라드의 성장 시스템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입니다.
- 성장 포인트 투자: 레벨업 시 원하는 스탯에 직접 포인트를 배분하며 육성 방향을 설계
- 마일스톤 버프: 특정 스탯 수치 달성 시 공격 속도 증가, 경험치 보너스 등 추가 능력치 자동 개방
- 소드 스킬 선택: 무기당 3개 제한으로 전투 상황에 맞는 스킬 조합을 미리 구성
- 장비 강화 및 패시브 이식: 불필요한 장비를 재료로 전환하고, 원하는 능력치를 주력 무기에 이식
- 왜곡된 던전 파밍: 엔드 콘텐츠용 키스톤 파밍을 통해 기본 스탯을 대폭 강화
엔드 콘텐츠로 준비된 왜곡된 던전은 로그라이트(Roguelite)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로그라이트란 매 회차마다 구조가 무작위로 바뀌는 던전을 반복 공략하면서 점진적으로 캐릭터를 강화하는 게임 방식입니다. 메인 스토리를 마치고 처음 들어갔다가 1층 보스에게 처참하게 당한 게 솔직히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레벨과 장비를 충분히 갖추지 않으면 진입 자체가 쉽지 않지만, 그만큼 깨고 나왔을 때의 성취감도 있었습니다.
원작 팬에게 이 게임은 어떤 의미인가
소드 아트 온라인 게임 시리즈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무난함과 한계를 동시에 반복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코스 오브 아인크라드는 그 흐름에서 얼마나 벗어났을까요? 저는 방향은 맞는데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키리토 의존에서 벗어난 것은 분명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고민하고, 그 안에서 독자적인 서사를 만들어 가는 구조는 앞으로 시리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반다이남코의 코드 베인 II처럼 파트너 캐릭터를 한 명 선택해 전투를 함께하는 구조도, 단순히 인원을 줄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략적인 파트너 선택이 전투 난이도를 실질적으로 조절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설계 의도가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솔직히 꽤 많습니다. 몬스터 디자인이 늑대, 곰, 트롤의 색깔과 크기만 바꾼 수준에 머물러 있고, 같은 구조의 중간 보스가 다른 구역에서 재활용되는 빈도도 높습니다. 원작이 VRMMORPG(가상현실 대규모 다중 접속 역할수행 게임)를 배경으로 한다는 설정 특성상 반복적인 콘텐츠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게 완전한 면죄부는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배경 설정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플레이어가 발견하고 놀랄 수 있는 요소를 설계하는 것이 개발자의 역할이니까요.
게임 시장 전반적으로 보면, 액션 RPG 장르에서 탐험의 밀도와 몬스터 다양성이 게임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게임 정보 매체인 패미통(Famitsu)의 리뷰 지표를 살펴보면, 최근 높은 평가를 받는 액션 RPG들은 대부분 탐험 자체를 보상으로 만드는 설계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에코스 오브 아인크라드가 다음 작품에서 이 부분을 얼마나 채워올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드 아트 온라인 원작을 모르는 사람도 에코스 오브 아인크라드를 즐길 수 있을까요?
A. 원작 지식이 없어도 기본 스토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설정이나 배경에 친숙하지 않다면 초반 몰입감이 다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 아인크라드 편을 한 번 보고 플레이하면 이야기의 맥락이 훨씬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팬이 아닌 분이라면 전투 시스템 자체의 재미로 즐기는 방식도 있긴 합니다.
Q. 에코스 오브 아인크라드의 플레이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A. 메인 스토리만 따라가면 20시간 내외로 마무리됩니다. 엔드 콘텐츠인 왜곡된 던전과 최고 난이도 보스 공략까지 포함하면 40시간 이상을 충분히 투자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필드 탐험이 제한적인 구조라 스토리 진행 중에는 체감 속도가 느리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Q. 전투가 어렵다고 느껴지는데 어떤 파트너 캐릭터를 선택하는 게 좋을까요?
A. 처음 플레이하거나 방어적인 스타일이라면 이오리를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이오리는 범위 내 체력을 지속 회복시키는 치유 장판 스킬을 보유하고 있어 생존력이 크게 올라갑니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원한다면 체력이 낮아질수록 공격력이 증가하는 방어막을 부여하는 자시를 선택해 반격 타이밍을 노리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Q. 소드 스킬 조합은 어떻게 구성하는 게 효율적인가요?
A. 무기당 3개의 소드 스킬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상태 이상 유발, 자세 붕괴, 딜링 스킬을 하나씩 배치하는 구성이 범용성이 좋습니다. 보스전에서는 부위 파괴가 가능한 절단 계열 스킬을 반드시 하나 넣는 게 장기적으로 전투를 유리하게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레이피어에 오블리크 런지를 기본으로 넣고 나머지 두 슬롯을 상황에 맞게 바꾸는 방식을 주로 썼습니다.
Q. 엔드 콘텐츠인 왜곡된 던전은 언제부터 도전할 수 있나요?
A. 메인 스토리를 완전히 클리어한 이후에 개방됩니다. 단, 처음 진입하면 생각보다 훨씬 높은 난이도에 당황할 수 있으므로, 장비 강화와 패시브 이식을 어느 정도 완료한 뒤 도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곡된 던전의 깊은 층일수록 드롭되는 키스톤의 효과가 강력해지므로 반복 공략할 동기가 충분히 있습니다.
에코스 오브 아인크라드는 소드 아트 온라인 게임 시리즈 역사에서 방향 전환을 시도한 첫 작품이라는 의미가 분명히 있습니다.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구석이 많고, 텅 빈 필드와 반복되는 몬스터는 여전히 발목을 잡습니다. 그럼에도 전투 시스템과 성장 요소는 충분히 즐길 거리를 제공합니다. 원작 팬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볼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다음 시리즈가 이 출발점 위에 무엇을 쌓아올릴지, 그게 진짜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 참고: https://kr.ign.com/echoes-of-aincrad/15285/ekoseu-obeu-ainkeuradeu-ribyu